"일본 수출규제 이후 오히려 분위기가 좋아졌습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과 제품 공급을 위한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9일 '2019 로보월드'가 열리고 있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만난 류재완 에스비비테크 대표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에스비비테크는 매출액 92억원의 작은 기업이다. 정밀제어에 필요한 감속기와 베어링 등을 생산한다. 작은 기업이지만 로봇용 감속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이 김포시 월곶면에 있는 생산공장을 방문해 화재가 됐다.
감속기는 빠르게 돌아가는 전기모터를 이용해 로봇의 움직임을 만드는 장치다. 자동차의 기어와 같은 역할을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모터의 회전속도를 회전력으로 바꾸기 때문에 속도를 감속시킨다는 의미에서 감속기라 불린다.
로봇용 감속기는 50년간 일본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모닉드라이브시스템사가 미국에서 특허를 사들여 제품을 개발한 후 50년 이상 세계시장을 독점했다. 2013년 특허가 만료되면서 일본 중국 등에서도 새로운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국내에선 에스비비테크가 가장 앞서 있다. 창업자인 이부락 에스비비테크 고문은 2000년대 중반 로봇용 감속기 시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후 10여년 동안 베어링사업에서 얻은 수익 모두를 감속기 개발에 쏟아 부었다. 2013년 처음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국방 안테나제어용으로 제공해 품질테스트 합격을 받았다. 일반 로봇용 감속기는 2016년 양산을 시작했고, 2017년 국산화 산업포장을 정부에서 받았다.
류 대표는 "이 고문이 고집스럽게 국산 감속기 개발에 매달린 결과 일본제품 못지않은 감속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며 "로봇산업에서 핵심인 감속기 분야에서 국내기술 자립을 이뤄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에스비비테크가 10여년의 노력 끝에 국산 감속기를 개발했지만 판로개척은 어려운 상태였다. 국내외 로봇관련 기업에서 일본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높아 국산제품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 수출규제는 에스비비테크에 오히려 기회가 됐다. 감속기 자체는 일본의 전략물자에 포함돼 있지 않지만 감속기 핵심부품인 베어링은 전략물자에 해당해 수출규제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류 대표는 "그동안 수없이 접촉했지만 문을 열지 않았던 국내외 기업들과 제품공급을 논의하고 있다"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실증테스트가 완료되는 내년 초에는 구체적인 납품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시장을 시작으로 중국과 미국 등에 진출을 준비 중"이라며 "2024년 로봇용 감속기 30만개 이상을 판매해 세계시장 점유율 10% 이상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류 대표는 "감속기를 비롯해 국내 기계용 정밀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실증테스트 기회를 찾기 힘들다"며 "정부와 대기업이 이런 부분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